
장희나는 현대미술의 개념 및 형식과는 무관한 시각예술작업을 오랜 시간동안 지속해오고 있는 창작자입니다. 사유의 산물로서의 예술작업이라기보다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에 가까운,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창작활동을 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정체가 무엇인지, 이것을 왜 하는지 말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작업의 시공간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집중과 고민, 판단과 선택들이 창작자 안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며 아주 느리지만 굉장히 견고하게 장희나라는 개인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자기표현이 언어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거나, 행동이나 의사표현이 통제받는 삶을 살아온 장희나 창작자에게, 오롯이 자신만이 존재할 수 있는 작업의 시간과 종이 위의 공간, 그것을 채워갈 미술장비들이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캔버스에 조곤조곤하게, 혹은 진하고 강렬하게 나열된 색상 유닛unit들, 그리고 그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빛깔의 캔버스를 마주하면서, 자신만의 질문들을 만들고 답하는 과정으로 누군가의 낯선 세계에 발들여 보시길 제안합니다. 캡션도 설명도 없는 불친절한 전시이기도 하지만, 이 그림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무엇을 그린건지, 왜 이렇게 그린건지, 혹시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지식이나 교양 수준을 탓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미술을 대하는 우리의 정형화된, 혹은 학습된 태도를 잠시 벗어놓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관람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무제4 (Untitled4)
15X15cm 캔버스에 마커펜
2021
이러한 작업을 정신장애로 인한 병증의 일환으로 인식하거나, 해결 또는 개선해야 할 문제점으로 여기거나, 창작자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한 해석들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일반적’ 이해의 범주로 끌어들이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과거에서, 사회가 규정한 정체성을 벗어나 개인적 특수성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들이 현재 장애예술 존재론의 큰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예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 그리고 각자 어떤 소수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또 다른 관점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필연적으로 ‘예술’에 대한 논제가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 작업들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러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예술가 혹은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이 작품들은 예술보단 복지의 차원에서 해석해야 맞는 것이 아닌지 등, 예술 제도를 기준으로 한 질문들과 끊임없이 마주칩니다.
예술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아주 무겁고 고귀하며 어려운 단어입니다. 하지만 예술을 규정하는 프레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고, 탈피하고, 부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동시대 예술의 정체성이자 가치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예술을 탐구하는 문법과는 별개로 이것 또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자 인류를 향한 예술적 운동이자, 예술을 구성하는 한 파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예술작품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슨 씨앗을 뿌리게 될 것인가이다’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또한, 앞서 말한 장애예술을 인식하는 사회적 큰 흐름들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장애인에게는 재능보다는 기능이라는 표현이 적용되고, 장애에 대해 설명할 때 ‘증상’과 ‘완화’ 혹은 ‘개선’ 등의 어휘들이 공적인 자리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장애를 ‘부족함’이 아닌 ‘개별성’으로 이야기하는 장애예술 담론들이야말로 예술과 인류가 가야할 방향이라는 주장과 함께, 관련한 사회적 지성과 감수성 또한 병행되고 있는지 확신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장애유무, 성별, 지역, 세대, 국적, 인종 등, 분류 후 정체화하기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개별성에 주목하기’가 가능할까요?
발견된 수많은 개별성들과 동등한 관계맺기를 통한 ‘모두 함께 살기’를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아직은 확실치 않고, 가야할 길은 멀게만 보이고, 과정에 쉽지 않은 일들 투성이지만,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한 경험과 이야기들로 쌓아온 2024년을 뒤돌아보며 다가올 2025년을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만들어갈 용기와 힘을 모아봅니다.
서로 다른 색깔들이 가까이 모이고 뭉쳐야만 비로소 드러나는 형형색색의 반짝임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보는 장희나의 작품 속에서도,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일상과 사회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2024.12.23. 사단법인 누구나